측정의 역사

수학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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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측면에서 국가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도량형 통일과 점점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사회적 서열을 거부하고 공통의 '인류애'를 받아들이면서 도량형을 공유하고 공정하게 적용해야 하며 도량형을 악용하여 착취하는 중세의 악습을 철폐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쿨라는 공통의 인류애야말로 근대 이전의 유럽의 농업 국가가 측정 체계를 뜯어고칠 수 있었던 필요조건이었다고 주장한다. "인권 선언을 공포하고 봉건적 권리를 일소하고 시장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도량형을 개혁할 수 없다." 거꾸로 보면 도량형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인류애라는 고귀한 이상을 떠받칠 수 없다. 쿨라가 말한다. "도량형의 표준화가 진척되는 과정은 매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정, 즉 인류의 연대가 굳건해지는 과정을 뚜렷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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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사실은 영국이 식민지를 약탈하고 파괴하고 착취한 것이 장기적으로는 미터법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이 19세기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토착 문화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관습과 기반 시설이 초토화되고 현지 도량형이 말살되어 20세기에 미터법이 전 세계에 뿌리내릴 여건이 조성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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