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되지 않으면 임계성은 없다
보존되지 않는 자기조직화 임계성 모형에서 제시했듯이, 에너지 보존이 임계성의 필수 요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2년 전 세미나에서 이 주제로 발표했을 때 한 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루려고 욕심을 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수만 정리해놓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마침 그런 질문이 있었는데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부분을 다시 봤습니다.
1997년 브뢰커(H.-M. Broker)와 그라스베르거(P. Grassberger)가 <피지컬 리뷰 E(PRE)>에 낸 논문에서는 에너지 보존이 임계성의 필수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OFC 지진 모형(Olami-Feder-Christensen earthquake model)의 랜덤 이웃 모형을 이용합니다.
N개의 자리 각각에는 0 이상 1 미만의 에너지가 랜덤하게 주어지고, 모든 자리의 에너지가 아주 조금씩 연속적으로 커집니다(에너지 주입; injection/loading). 그러다 어떤 자리의 에너지가 1 이상이 되면 무너지기(toppling)가 일어납니다. 이 때 이웃 n개를 랜덤하게 골라서 각 이웃에 무너진 자리의 에너지에 α를 곱한만큼의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α는 1/n보다 작은 값으로 주어지며 무너진 자리의 에너지는 0이 됩니다. 에너지를 전달받은 자리 중 에너지가 1 이상이 되면 무너집니다... 그러다 모든 에너지가 1 미만이 되면 다시 모든 자리의 에너지를 아주 조금씩 연속적으로 키웁니다.
α가 1/n보다 작기 때문에 생기는 무너진 자리에서의 에너지 감소량과 사태 사이에 모든 자리에 주입되는 에너지 증가량이 같아야 총에너지는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될 겁니다.
\[(1-n\alpha)\overline{z_{act}}\langle s\rangle = N(1-\overline{z_{max}})\]
우변의 zmax는 사태가 끝나고 난 후 각 자리의 에너지 중 가장 큰 값을 뜻합니다. 결국 그 놈의 에너지가 1이 될 때까지 모든 자리의 에너지를 연속적으로 증가/주입시킬테니까요.
다음으로 무너지기 비율(toppling rate) σ를 정의하는데요, 이건 각 자리가 단위 시간 동안 평균적으로 몇 번 무너지기를 하는가를 뜻합니다. 에너지 주입 속도가 1이라고 하면 1 - zmax만큼의 '시간' 동안 사태의 크기를 전체 자리의 개수로 나눠준 값입니다.
\[\sigma=\frac{\langle s\rangle}{N(1-\overline{z_{max}})}=\frac{1}{ (1-n\alpha)\overline{z_{act}}}\]
지금부터는 N이 무한히 큰 경우만 생각하겠습니다. 한 자리가 z만큼의 에너지를 가질 확률밀도를 P(z)라고 합시다. P(1)은 새로운 사태가 일어날 비율(rate)이며, P(0)은 무너진 후 에너지가 0이 된 자리가 생겨나는 비율(rate)이며 곧 σ와 동일합니다.
\[\langle s\rangle=P(0)/P(1)\]
사태의 크기는 새로운 사태가 일어난 후 얼마나 많은 자리가 무너졌느냐이므로 위식처럼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자리의 에너지 z는 마지막으로 무너진 후(즉 z = 0)에 다른 무너진 자리의 이웃으로 선택되어 에너지를 받았거나, 사태 사이의 에너지 주입에 의한 결과입니다. 이웃으로 선택된 횟수를 j라고 하면 Pj(z)는 j번 선택된 자리의 에너지가 z일 확률밀도가 되죠.
\[P(z)=\sum_{j=0}^mP_j(z),\ z\in [0,1]\]
이중에서도 일단 P0(z)만 구하겠습니다. j가 0이므로 여기서 z는 에너지 주입이 z 시간 단위 동안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즉 마지막으로 무너진 후 z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 번도 이웃으로 선택되지 않을 확률을 구하면 됩니다. 뿌아송 확률분포를 이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P_0(z)=\sigma e^{-n\sigma z}\]
지수 앞에 σ가 붙은 건, 일단 한 번은 무너지고나서 z 시간 단위 동안 선택되지 않아야 하므로, '일단 한 번 무너진 자리'라는 조건에 해당합니다. 이제 재료는 완성되었습니다. 위 결과들을 좌르륵 꿰면...
\[\langle s\rangle = \frac{\sigma}{P(1)}\leq \frac{\sigma}{P_0(1)}=\exp(n\sigma)\leq \exp\left(\frac{n}{1-n\alpha}\right)\]
마지막 부등식은 zact가 1 이상이라는 사실로부터 얻어졌습니다. 이제 이 결과를 보면 α가 1/n보다 작으면 우변이 유한하므로 평균 사태 크기도 유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임계성이 아니라는 걸 말합니다. 임계성이 되려면 α = 1/n이어야 하고, 이는 곧 에너지 보존을 뜻합니다.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평균 사태 크기의 최대값(맨 우변)이 α가 1/n보다 작아도 꽤 큰 값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컴퓨터 시늉내기에서 어느 정도 거듭제곱 분포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최대값까지 시늉내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죠. 이 얘기는 앞 글에서 언급한 무노즈의 논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정말 다 필요한가?라고 물을 수 있는데요, 맨 처음 쓴 에너지 증가량과 감소량이 같아야 한다는 식을 다시 봅시다:
\[(1-n\alpha)\overline{z_{act}}\langle s\rangle = N(1-\overline{z_{max}})\]
논문에서는 N이 무한해도 좌변은 유한해야 한다는 전제를 당연하다는 듯이 쓰는데, 그럼 여기서 이미 α가 1/n보다 작으면(비보존) 평균 사태 크기가 유한하다(비임계성)는 결론이 그냥 나옵니다;;; 그런데 이 전제가 왜 당연한 건지 모르겠네요.
산수는 정리가 되는데, 물리는 정리가 잘 안됩니다. 무너지기가 일어날 때마다 에너지가 손실드는데 그럼 언젠가는 더이상 전달될 에너지가 없어서 사태가 유한하게 끝나버릴 거다.라는 가설을 뒷받침할 수는 있지만, 모래더미 모형과는 달리 모든 자리에 에너지가 주입되고 이러한 '여분의 에너지'가 있으므로 에너지 보존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태가 무한히 지속될 수 있다.는 가설을 기각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 있는 건지... 산수만 보면 그렇다는 건데, 그걸 다시 물리적으로 이해하는데 뭔가가 부족합니다.
사실 무노즈의 논문에서는 이러한 '여분의 주입된 에너지'가 에너지 손실을 보상해주므로 '겉보기 임계성(무노즈는 자기조직화 유사임계성(SOqC)이라는 말을 제시합니다.)'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손실량과 정확히 같은 여분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것이 특정 변수를 미세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므로 '자기조직화'라 불릴 수 없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관련논문
- http://link.aps.org/doi/10.1103/PhysRevE.56.3944 1997년 브뢰커(H.-M. Broker)와 그라스베르거(P. Grassberger), <피지컬 리뷰 E(PRE)>